양승조 충남 지사는 관운이 많다. 민주당 바람이 태풍으로 일던 지난 번 선거에서 충남 도백 자리는 박수현 전 청와대대변인이 따놓은 당상 같았다. 그런데 어느날 여풍(女風)에 휘말리면서 그는 어이없게도 본선에 나가보지도 못한 채 낙마하고 말았다. 그 소문 진위를 따져보고 말 것도 없이 말이다.
‘승조시대’ 양승조의 깜냥
어부지리도 아닌 그 역풍은, 생소하기조차 했던 양승조 후보에게 순풍호 돛단배를 안겨주었다. 양승조 후보는 숨겨져 있다가 준비된 후보라도 되듯, 낙승하고 3년째 순항중이다. 이런 흐름이 이어지면 초선 도백으로서의 전도도 꽤나 양양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최근 그를 둘러싼 기류가 심상찮다. 5월 10일 전후 대선 출마 선언 예정인 걸 보면 대선 행보도 서슴지 않겠다는 듯,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에서 ‘여기저기= 여러분의기쁨, 저의기쁨’에 이어 ‘승조시대’까지 등장하였다. 승조시대? 어감 탓인지 영조 정조 승상 같은 말들이 연상되는 네이밍이다.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다. 승조시대 양승조는 과연 영정조에 견줄 깜냥인지 저울질해보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민주당의 표상인 진보(進步)만 놓고 볼 때 양승조는 얼마만큼의 무게가 나갈까? 여러 척도가 있겠지만 우리는 언론이라는 척도로 그의 함량을 가늠해 보고자 한다.
언론은 언로를 전제로 한다. 언로(言路), 언어의 길, 말이 나아가는 길이다. 양승조의 탁월한 기억력은 오랜 판사경력과 의정 활동으로 한층 무르익은 듯하다. 각종 통계수치 같은 것을 메모 없이 척척 말할 때 보면 “천재다”찬탄이 저절로다. 기억력의 천재요, 말의 천재 같다. 그래서 그가 마이크를 잡았다 하면 말이 길어지는 편이다. 그의 언로는 길고, 기탄 없다.
문제는, 그 언로가 본인에게는 자유롭고 남에게는 그렇지 못하다는 맹점이다. 낡은 진보의식의 전형일 수 있다. 이런 얘기가 왜 나오는지, 한 가지만 적시해보자. 그의 공약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풀뿌리지역언론 지원이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지방신문사들을 돕겠다는 언론 아부나 길들이기 차원에서가 아니라, 풀뿌리 언론들이 제대로 기능해야 이 나라 언로가 살기 때문라는 인식 때문에 출발하였다고 믿어져서다.
낡은진보나 골통수구는 도긴개긴
얽히고 설킨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과 언로가 교통정리가 되고, 특히 그 실핏줄이 펑펑 돌아가야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이런 핵심을 꿰뚫고 있기에, 중앙언론이 아닌 지방언론에 주목한 것은 확실히 진보답다. 그러나 여기서 한 걸음도 더 나가지 못한다면, 이 진보는 낡은 진보이다. 과람한 수구보수보다 더 못한 결과를 잉태할 수 있는 게 머리 속에서만 뱅뱅 도는 ‘탁상형 진보’다.
현재 도청에서 진행하는 언론지원사업 하나만 봐도 무늬만 풀뿌리다. 낡고 느려터졌으면서도 나아갈 진(進)의 탈을 쓴 진보다. 어느 새 5월이 코앞이다. 전반기가 거반 지나간 상황에서도 지역 언론 공모 사업이 수개월째 동면중이다. 어느 사업이고 간에, 연중사업은 연초 1~2월에 결정을 하고 3월부터는 메인게임이 펼쳐지도록 해주어야 정상이다. 그럼에도 4월말 5월초인 지금도, 경칩날을 기다리는 시국이다.
공모언론사가 과다하다 보니 소정예산을 쪼개어 절반 탕평책으로 조정한다느니 하는 말이 항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만약 이런 고심이 해태행정의 한 원인이라면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 계획은 어떤 중심에서 세웠고, 검증된 ‘선택과 집중’보다 ‘생색내기 선심성’으로 저울추를 기울게 하려는 게 아닌지 저의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또다른 이유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코로나 정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발 빠른 행정 서비스’다. 언제까지 구태의연한 탁상행정에만 안주할 것인가? 아니, 지사로서 공직자들의 그런 태도를 수수방관만할 것인가?
언로는, 지도자 명운 가를 메스
도정업무가 방대하므로 지사로서는 담당공무원의 의사결정을 최대치로 존중하면서 전체를 조율해가는 게 조화롭다. 그럼에도, 와중에도 지역언론, 풀뿌리언로는 직접 챙겨봐야 한다. 살펴보기 전에 원칙 같은 것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었어야 한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구태의연한 공직자들은 자신을 공급자연 착각한다. 마치도 자기 창고를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눠주는 구휼(救恤) 정도로 여기는 창고지기 분위기가 아직도 팽배해 있다. 공모사업은 환난상휼(患難相恤) 차원이 아니다. 이 시대를 바꾸어갈 새로운 정책발굴의 선구자요 동료요 멘토들이다. 다양성 사회에서 공직자들은 걸언(乞言)이라도 해야 할 판국에, 여전히 수혜자 지위에 도취해 있는 듯싶다.
인공지능 AI, 빅데이터 등을 올라타도 시원찮을 마당에 바지 밑에서 주판알이나 튕기는 추태는 비단 충남도청만의 현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풀뿌리언로를 제일성으로 외쳐온 양지사의 충남에서는 그런 구태가 최소화되거나 불식되었어야 했다. 벌써 3년이나 되었으니 말이다.
그간 충청지역신문협회 15개 언론사는 장밋빛 충남시대를 외치며 동분서주해온 양승조 지사에게 말없는 응원을 보내왔다. 도정 서포터즈로서 도청 홍보실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여과 없이 실어내보냈던 적이 대부분이다. 이제는 아니다. 중앙에만 잘 보이고 지방에게는 뜨문뜨문한 도백은, 자신이 서 있는 땅의 지번을 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우리 나름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이 일은, 도지사 선거때의 초심, 즉 언로를 가장 중요시하겠다고 천명한 공약이 우리 피부에 와 닿을 때까지 줄기차게 계속 될 것이다. 언론사를 잘 해주라는 차원이 아니다. 언론이 살고 언로가 사통오달 뚤려야 대한민국 방방곡곡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행복의 길(道)에서 진로 방해나 하는 도백(道伯)은 승조시대의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 전영주 충청지역신문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