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룡은 50여건의 항일조직(독립군)을 소탕하였고, 6.25을 전후하여 수많은 민간인을 살육한 인간백정이며 이승만 호위무사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공안사건을 조작하여 죽어간 죄 없는 원혼들이 얼마나 될까? …일제 관동군의 씨앗에서 움튼 살인마이고 한국판 킬링필드이다.
▣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 예언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 그는 1944년 제 10대 마지막 조선 총독으로 취임하여 전쟁 물자를 지원하기 위해 인력과 물자를 일본으로 착취해간 인물이다.
“우리는 패(敗)했지만 조선(朝鮮)은 승리(勝利)한 것이 아니다. 장담 하건데, 조선인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日本)은 조선민(朝鮮民)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植民敎育)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78세ㆍ1875~1953)총독(總督)
한편 기시 노부스케(佐藤信介 91세ㆍ1896~1987)그는 만주국을 건설하며 일본이 아시아를 지배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철저하게 중국인과 조선인의 항일투쟁을 무력화시킨 A급 전범으로 체포되었지만 기소되지 않았고 일본의 제56, 57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현재 일본총리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70년 가까이 지속돼 온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재무장을 서두르는 인물이다. 현재 일본 총리인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바로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 일본이 만든 살인마 김창룡 킬링필드와 부수적 권력
아베 노부유키 예언대로 김창룡은 철저하게 일본의 식민교육을 받은 민족의 역적이며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한 인간백정이다. 1940년 일본 관동군 헌병으로 복무하며 50여건의 항일조직(독립군)을 적발하여 소탕하는 등 일본을 위해 독립군 토벌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며 국민을 무참하게 살육한 한국판 킬링필드 주역이다.
김창룡은 북한에서 반민족행위자로 2번에 걸쳐 사형선고까지 받았지만 탈출에 성공하여 한국에서 1947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후 여수-순천 사건의 공으로 1948년 육군 대위로 진급했으며 70일 만인 48년 11월 5일 소령으로 특진했다. 1950년 10월 말에 대령으로 다시 승진했으며, 1951년 5월 15일 “육군 특무부대 대장”으로 임명됐다.
김창룡은 이승만 정권의 호위무사만 했던 것은 아니다. 민간인인 보도연맹 30여만명을 군경을 이용하여 학살(김종필 증언-한국전쟁때 민간인 학살은 모두 김창용이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김천형무소 집단 학살 ▲경남 민간인 학살 ▲제주도민 학살 ▲대전 산내 학살 등 한국판 민간인 킬링필드을 자행한 인물이다.
김창룡은 1950년대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의 권력을 휘두르며 이승만의 왼팔 노릇을 하였다. ▲인민해방군사건 ▲관(棺) 사건 ▲삼각산 사건 ▲부산 금정산 공비위장 사건 ▲조병창 화재 사건 ▲정국은 국제간첩 사건 ▲동해안 반란사건(김종평 장군 사건) ▲김도영 대령 쿠데타 음모사건 ▲국가원수 암살음모 사건 ▲뉴델리 밀담설 등을 조작하여 반대세력을 제거하면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뿐만아니라 1992년 4월 12일 안두희(安斗熙)의 자백으로 김구 암살의 배후 인물로 김창룡이 거론되기도 했다. 반민주성과 독재성, 그리고 당시 군부의 부패상을 보여주는 실질적 증인이다.
6·25전쟁 중인 1951년 육군 특무대장 직위를 부여받은 김창룡은 '동해안 반란사건','뉴델리 밀담설‘ 등 각종 정치공작에 관여하던 중 1956년 1월 30일 아침 특무부대출신인 허태영 대령 일행에게 살해된다. 이승만은 사망 직후 그에게 1계급을 특진시켜 중장에 추서했다.
식민사관의 대두인 당대 최고의 역사학자 이병도가 김창룡의 묘비를 썼다. 간첩 등 오렬분자 2만5천명을 처단했다고 자랑스럽게 표기했다.
▣ 살인마 김창룡, 죽어서 42년만에 국립묘지(대전현충원)로 금의환양
민족문제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김창룡을 국립묘지로 이장하기 위해 국립묘지법까지 개정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통탄할 일은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이 이처럼 정확하게 맞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 일본(日本)은 조선민(朝鮮民)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植民敎育)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일본에 충성한 인물로 수 많은 애국지사와 죄없는 수십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인간백정을 법까지 바꿔가며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지구상에 또 있을까?
“김창룡이 죽은지 42년이 되는 지난 1998년 2월 13일 옛 동료와 기무사 소속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예포등을 쏘며 경기 안양시 석수동 개인 묘지에서 대전국립묘지 장군 제1묘역 69호로 이장했다.”
그리고 해마다 현충일이면 기무사령관의 조화가 묘지앞에 놓였다. 그러나 기무사령부가 개혁이 된 2019년에는 기무사령관의 조화는 보이지 않았다.
한편 오마이뉴스에 의하면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지부, 국가공무원노동조합, 대전민중의힘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6일 오전 11시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 반민족행위자와 군사반란 가담자 등 부적절한 안장자의 묘를 국립묘지에서 즉각 이장하라"고 촉구하바 있다.
또한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으로 이동해 단죄수를 묘역과 묘비에 뿌리는 ‘장군 제1묘역 안장자 죄악상 고발 퍼포먼스’와 함께 시민대회 참가자들은 김창룡(장군1-69), 김석범(장군1-71), 김동하(장군1-50), 이형근(장군1-11), 소준열(장군1-21)이 안장되어 있는 장군 제1묘역에서 이장을 촉구하며 파묘 퍼포먼스를 벌리기도 했다.